01. Prayer
02. Liberate
03. Awaken
04. Believe
05. Remember
06. Intoxication
07. Rise
08. Mistress
09. Breathe
10. Bound
11. Devour
12. Darkness




2000년 봄, 필자가 처음 디스터브드라는 밴드를 접했을 때이다. 그리고 2001년 여름, 오즈페스트 세컨드 스테이지에 섰던 이들을 보았다. 그리고 2002년 가을, 이렇게 밴드의 새 앨범을 감상하고 있는 중이다. 디스터브드가 데뷔할 당시는, 슬립낫이 점점 주가를 올리는 중이었고, 인큐버스의 매력이 많은 음악 팬들을 통해 전파되고 있었으며 P.O.D., 파파 로치 또한 뉴메틀, 랩코어 팬들을 섭렵하고 있었다. 한편, 당시(1999년 말) 발매되었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콘의 새 앨범은 그 이름 값만큼의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었다. 바야흐로 세대가 교체되어야 할 시점에 위의 선배들을 대체할만한 신진 세력들은 부재한 채 수많은 뉴메틀 밴드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자랑하며 쏟아져 나와 춘추전국시대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 디스터브드가 있다. '낯설게 하기' 즉 선배 밴드들의 방법론을 차용하되 개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던 신진 밴드들은 힙합, 일렉트로니카, 인더스트리얼 등 모든 것을 끌어들여 크로스오버하기에 바빴고, 디스터브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신선한 면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디스터브드에게는, 멀리는 블랙 새버쓰에서부터 메틀리카, 판테라, 콘, 툴, 롭 좀비까지 아주 다양한 선배 밴드들의 아우라가 섞여있었다. 하지만 특별히 어느 밴드의 영향을 받았다고 꼭 집어서 얘기하기란 힘들었고, 그렇다고 해서 전혀 새로운 무언가도 존재하지도 않은, 그런 밴드였다. 하지만, 뉴메틀 팬들에게 이들 사운드의 매력은 절대적이었다. '리듬과 그루브', 당시 락 키드들이 요구에 정확히 부합되는 사운드였다. 이들 특유의 절분된 음들이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는데다가 보컬리스트 데이빗 드레이만은 이를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타고난 보이스를 지니고 있었다. 툴의 메이너드 제임스 키낸과 페이쓰 노 모어의 마이크 패튼, 그리고 콘의 조나단 데이비스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드레이만은, 쏘아붙이는 듯한 리드미컬한 보컬 스타일(정확히 랩은 아닌)을 비롯해 광폭한 샤우팅, 거기에 멜로딕한 싱잉까지 정말 못하는 것이 없었다. 이러한 장점 외에 디스터브드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멜로디이다. 이들이 데뷔하기 전에도 세븐더스트, 인큐버스, 스테인드 등이 서로 다른 노선의 멜로디를 선보였던 터이지만, 아직 랩코어의 열기가 식지 않은 때라 부드러운 멜로디보다는 래핑의 선호도가 높았던 시기였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행로는, 시류를 한발 앞서면서 또한 시류를 제대로 탄 것이었다. 그리고,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일, 작년 오즈페스트 세컨드 스테이지의 메인 밴드로 활약했던 디스터브드는 앨범에서 들었던 것 이상의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밴드는 라이브를 보고 판단하라', 라고 한다면 디스터브드의 라이브는 꼭 봐야할 것이다. 스튜디오 앨범에서 보였던 리드미컬한 그루브와 데이빗 드레이만의 보컬은, 라이브에서도 전혀 손실되지 않은 채 구현되고 있으며 단지 헤비하고 공격적인 면을 떠나 댄서블한 면까지 갖추고 있으니 관객들을 휘어잡기에는 딱이다. 새 앨범 소개에 들어가기 전, 싱글 곡의 뮤직비디오에 관해 먼저 얘기해야겠다. Brothers Strause가 디렉팅한 "Prayer"의 뮤직비디오 씬들이 마치 9.11 테러의 장면들을 인용한 듯해 문제가 되었는데, 드레이만과 신과의 대화를 가사로 실어낸 이 곡의 비디오 클립은, 성경 욥기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삶의 장애물들과 운명이 던져 놓은 시험들을 극복하는 것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단지 건물이 무너지는 씬들이 9.11 테러와 무척 닮아있다는 이유로 매체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보통 이러한 경우에는 뮤직비디오를 다시 편집하기 마련이나 밴드는 이를 거절했고, 비록 MTV에는 방송되지 않을지언정 클립을 편집할 의향이 전혀 없다고 선언했다. MTV가 앨범을 홍보하는데 있어 가장 좋은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이 비디오는 앨범이나, 웹사이트 등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새 앨범 타이틀이 '믿음'이고 싱글 곡이 '기도'이다. 디스터브는, 그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겪은 듯하다. 데뷔 앨범 [Sickness]가, 사회규범과 조직에 억눌려진 개인을 위한 카타르시스였다면, [Believe]는 좀더 구체적인 경험들을 풀어놓고 있는데 앨범 타이틀처럼 믿음이 그 주요 테마이다. 데이빗 드레이만은, 인간애의 잠재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념의 부족을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단지 불만을 털어놓았던 'Sickness'를 넘어서 'Believe'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것, 훨씬 성숙해진 인상이다. 보수적인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의 뜻을 어기고 락 밴드에 몸담고 있는 드레이만은, 오즈페스트 백스테이지에서 그를 끝까지 탐탁해 하지 않았던 할아버지의 임종소식을 들어야 했고, 지루한 음악 비즈니스를 경험해야 했으며 여성들과의 성사되지 못했던 로맨스 그리고 투어를 하는 동안 주위에 여러 흥청망청 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스스로를 컨트롤해야만 했던 스트레스 또한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으로 경험은 [Believe]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밴드는 시카고의 한 스튜디오에서 전작과 마찬가지로 Johnny K의 프로듀싱 하에 새 앨범을 녹음하였는데, [Sickness]와 비교해본다면 댄서블하리만치 출렁이는 사운드보다는 감성적인 멜로디가 훨씬 강조된 채로 좀더 내성적인 모습이다. 뮤직비디오로 문제가 되었던 싱글 곡 "Prayer"는 절분된 음들의 그루브는 여전하되 중간에 한층 소프트해진 드레이만의 보컬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들 특유의 활력 있는 리듬이 출렁거리는 "Liberate"는 라이브에서 연주된다면 관중석을 들뜨게 할만한 곡이다. 한편 지리한 미국 음악계를 노래한 "Awaken"에서는 명확히 툴의 영향력이 감지되며 여기에 활력 있는 뉴 메틀 방법론을 덧붙였다. "Liberate"과 함께 또 다른 싱글 커트 곡으로 채택될 만 하다. 최면 적인 보컬 톤으로 종교적인 색채를 가미한 "Believe"는 끊음 없이 흐르는 분절음과는 별개로 전작에 비해 한층 내성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Remember"이후 전반적으로 이러한 감성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Darkness"에서 가서 정점을 이루고 있다. 잔잔한 스트링과 어쿠스틱 기타, 이제까지 들어본 중에서 가장 소프트한 드레이만의 보컬은 약간 생소하기까지 하다. [Believe]는 전체적으로 뉴 메틀의 방법론을 담고 있되 전작에 비해 내성적이고 성찰 적이다. 전작에 비해 프로그래밍, 일렉트로닉 적인 요소를 자제한 채 툴의 영향력이 노골적으로 보여지는데 이는 감성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드러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 어느 밴드보다 선배 밴드들의 영양분을 소화하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가. 한편 데이빗 드레이만의 보컬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서 데뷔 앨범에서 '나 이렇게 잘해'라고 쏟아내는 것을 떠나 성숙한 완급조절을 보여주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뉴 메틀 계에 몸담고 있는 밴드들이 새 작품에서 이처럼 멜로디의 감수성을 적극 유입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추세가 언제까지, 어떻게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