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Let It Rain
02. Another Sun
03. You're The One
04. In The Dark
05. Almost
06. Hard Wired
07. Say Hallelujah
08. Broken
09. Happy
10. Goodbye
11. I Am Yours
12. Over In Love - (instrumental)




희망을 쏘아올린 이 시대의 싱어 송라이터 트레이시 채프먼, 그리고 그녀의 어쿠스틱 포크 사운드가 여전한 새 앨범 [Let It Rain] 늘 진지한 가사로 싱어 송라이터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포크 가수 트레이시 채프먼이 돌아왔다. 이번에 새로 내놓은 음반 [Let It Rain]은 2000년도 앨범 [Telling Stories]에 이은 2년 만의 신보다. 여러 악기들의 쓰임이나 기법 등에서 다소 스펙트럼이 넓어졌으나 급격한 변화나 반전은 있을 수 없다. 채프먼의 작품들이 늘 그렇듯 평온한 포크 록 테두리 속에서 조금씩 변주해 나간다. 잔잔하게 퍼져가는 어쿠스틱 기타와 너무나도 독특한 채프먼의 목소리. 바로 14년 간 이어온 채프먼의 음악이다. 그런데 그녀가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살펴보기 위해 박노해라는 시인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80년대 중반 이후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 도서였던 시집 [노동의 새벽]의 저자로서, 절망적인 한국 노동 현실을 고발한 혁명가였다. 그러던 그가 오랜 감옥 생활 중에 말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의 사유와 노선이 바뀐 것이다. '투쟁을 통한 노동해방'에서 먼저 인간이 서야 한다는 '몸철학'으로. 그때부터 박노해는 지금까지 변화된 신념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글에 그를 인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지도, 게다가 트레이시 채프먼의 팬으로선 무척 불쾌할 수도 있다. 허나 1988년 데뷔 앨범 이후 지금까지 그녀가 발표한 5장의 음반을 짚어가다 보니 문득 그 시인이 떠오른다. 그 애매한 연상작용의 이유는 그 둘의 변이 과정이 어느 정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채프먼 역시 사회적인 발언은 계속 해나가고 있지만 예전의 과격했던 메시지를 접고 사람 사이의 온화한 관계, 그리고 희망을 추구하고 있다. 레이건 시대가 저물어 갈 때 나온 그녀의 처녀작 [Tracy Chapman]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 '개인의 시대'에 채프먼은 현실 고발, 투쟁, 그리고 혁명을 노래했다. 레이건의 '작은 정부' 정책의 산물인 사회 복지 예산 삭감과 그에 따른 흑인 소외. 바로 그러한 것들에 정면 대응했다. 저항 성격의 포크 음악을 들고 그녀는 혁명을 촉구했고('Talkin' Bout Revolution'), 암담한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소망했으며('Fast Car'), 매맞는 여성과 이웃의 무관심을 고발했다('Behind The Wall'). 물론 'Baby, Can I Hold You' 같은 아름다운 러브 송도 있었지만. 당시로서 드문 사회 발언이었던 그녀의 데뷔음반은 예기치 않게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상당한 호응과 극찬을 받았다. 전세계적으로 1,3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한편, 이듬해인 198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신인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그렇지만 투쟁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욱 거세졌다. 1988년도 2집 [Crossroads]에서는 "그들은 내가 가진 것과 자존심을 빼앗아 갔지. 나는 싸우기 위해 태어났어"라고 노래한 'Born To Fight', 장기간 투옥 중이던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를 위해 쓴 'Freedom Now' 같은 곡을 통해 사회 비판의 수위를 높여나갔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힙합과 얼터너터브 록 물결이 밀어닥치자 트레이시 채프먼의 사회적 발언들이 뒷전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사실 흑인들은 그녀의 조용한 포크송보다 힙합이 더 친근했고, 그녀의 지지자였던 진보적 백인들은 그 반복에 슬슬 싫증 났던 것이었다. 한번 실패를 경험한 채프먼은 말하기 방식을 바꿨다. 지금껏 해왔던 직설화법이 아닌 우회적으로 세상을 노래했다. 1996년 앨범 [New Beginning]은 여전히 흑인의 한을 쓰다듬는 내용을 다루고 있었지만 희망을 담은 가사와 재킷에 담긴 그녀의 환한 미소는 제목 그대로 그녀의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포크 록이 재현된 전작 [Telling Stories]는 채프먼의 제 2의 방향성을 집약한 작품이다. 부드럽고 편안한 사운드에 내적인 평화를 희구하는 가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경향은 이 음반으로 이어진다. 기타와 오르간 등을 이용한 포크 록 사운드에 비교적 단순 명료하면서도 반복되는 가사를 통해 메시지를 각인시키고 있다. 트랙 소개에 앞서 그녀가 캐롤 킹, 랜디 뉴먼 등 70년대 싱어 송라이터에 이은 '싱어 송라이터 2세대'라는 사실을 주지하고 싶다. 채프먼은 이 음반에서도 작곡, 작사, 그리고 공동제작을 해냈다. [Let It Rain]에는 보너스 트랙 'Over In Love'를 포함, 비교적 다채로운 12트랙이 실렸다. 타이틀 트랙이자 오프닝 곡인 'Let It Rain' 역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다독이고 있다. 보컬과 전체적인 악기 쓰임이 쓸쓸하면서도 부드럽게 귓전을 감싼다. 이미 미국 라디오에 선보인 첫 싱글 'You're The One'은 오프닝 트랙과는 달리 손뼉 박자와 오르간, 스틸 기타 등을 이용해 흥겨운 분위기를 내는 곡으로, 누가 뭐라 하든 세상의 유일한 존재인 당신의 의미를 더 깊이 느끼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어지는 4번째 트랙 'In The Dark'은 트립 합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곡 전체를 감싸고 있는 색다른 느낌의 곡이며, 묵직한 사운드에 변칙적인 리듬이 진행되는 'Almost', 전반적으로 느릿한 진행의 아코디온 연주, 그리고 그와 이질적일 것만 같은 컨트리 풍의 빠른 기타 연주가 함께 등장하는 'Hard Wired' 등도 종전과는 조금 다르게 들린다. 그 외에 박수와 탬버린이 주도하는 가스펠 넘버 'Say Hallelujah', 첼로, 비브라폰의 사용으로 챔버 팝처럼 들리는 'Over In Love' 등도 보석 같은 트랙들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 많은 악기들 속에서도 언제나 트레이시 채프먼의 보컬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그녀 음악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한 가지 더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앨범을 함께 제작한 이가 피제이 하비(PJ Harvey), 일스(Eels) 등과 작업한 바 있는 존 패리시(John Parish)라는 사실. 인디 록 진영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그는 채프먼의 앨범에서 프로듀싱은 물론 보컬과 기타, 베이스, 드럼까지 담당함으로써 사운드의 풍요로움과 보다 특별한 분위기를 얻었다. 트레이시 채프먼의 신보 [Let It Rain]은 모던하지 않다. 70년대 재래식 체취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속도의 시대'에도 그녀의 포크 록은 엄연히 가치가 있다. 이 앨범을 동시대 여성 '작가'들인 수잔 베가(Suzanne Vega), 나탈리 머천트(Natalie Merchant)의 최근 음반들과 함께 듣도록 권하고 싶다. 모두 내적 성찰과 사회 발언,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싱어 송라이터의 진정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글 / 고영탁(월간 oimusic 기자) 자료제공 / 워너뮤직